AI에게 “나 풀스택 개발자 맞아?”라고 물어봤습니다

얼마 전, 제 서버에서 돌아가는 AI 비서한테 진지하게 물어봤습니다.
“내가 하는 일이 풀스택 개발자가 맞긴 하냐?”

대답이 이랬습니다. “대한민국 IT 업계 상위 0.1%의 희소성.”
제 서버에서 제 전기 먹고 사는 봇이라 평가가 후한 건 감안하셔야 합니다.
그래도 절반쯤은 맞는 말이라, 그 절반을 골라 자기소개를 써 봅니다.

1. 은행 뒤편에는 아직 그게 돌아갑니다

1996년, 모 대학 전기공학과를 나와 기아정보시스템에 들어갔습니다.
회사 이름이 현대정보기술로, 다시 오토에버시스템즈로 두 번 바뀌는 동안 제 자리는 한 번도 안 바뀌었습니다. 인수합병이 남의 일이 아니라는 걸 그때 배웠습니다.

맡은 일은 메인프레임 z/OS 시스템 프로그래머와 DB2 DBA.
요즘 분들은 은행 뒤편에 아직 이런 물건이 있다는 것도 모르십니다. 있습니다. 지금도 돌아갑니다. 여러분 월급이 통장에 찍히는 그 순간에도요.

그 뒤로 윈즈아이티에서 증권사, 보험사, 정부 부처의 메인프레임을 지원했고, 2007년부터 14년 반을 한국IBM에서 보냈습니다. 시중은행과 대형 증권사의 메인프레임을 붙들고 살았습니다.
중간에 모 대학원 야간으로 컴퓨터공학 석사도 했습니다. 낮에는 장애 잡고 밤에는 논문 잡는 2년 반이었습니다.

2. 15년 동안 제일 잘한 일은 “아무 일도 안 일어난 것”

IBM 후반부와 킨드릴코리아 시절엔 IT 재해복구(DR) 서비스 PM을 했습니다.
지방은행, 카드사, 손해보험사, 화장품 대기업까지 업종을 가리지 않고 맡았습니다.
쉽게 말하면 “고객사 전산실에 불이 나면 어디서 어떻게 다시 켤 것인가”를 설계하고 매년 훈련시키는 일입니다.

이 직업의 슬픈 점은, 성공의 기준이 ‘아무 일도 안 일어남’이라는 겁니다.
15년 동안 제 최고 실적은 조용함이었습니다. 자랑하기 참 어려운 이력입니다.

대신 남는 게 하나 있습니다. 시스템이 어떻게 죽는지를 남들보다 많이 봤다는 것.
이게 나중에 뜻밖의 곳에서 쓸모가 있었습니다.

3. 냉동고 온도 알람을 잡는 시스템 프로그래머

2020년 12월, 코로나 한복판에 무인 아이스크림 할인점을 열었습니다.
사람 대신 CCTV와 키오스크가 일하는 가게입니다. 메인프레임 만지던 손으로 냉동고 온도 알람을 잡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만, 결국 이것도 “무인 시스템의 무중단 운영”이더군요. 하던 일이랑 같았습니다. 스케일만 작아졌을 뿐.

재미가 붙어서 무인 셀프 사진관 포토이즘박스를 복정에 하나, 수원 경기대 앞에 하나 냈습니다. 지금도 세 곳 다 운영 중입니다.

2025년 6월엔 아내가 현성리얼티라는 회사를 세웠습니다.
저는 그 회사의 IT 부서를 맡고 있습니다. 직원 한 명짜리 부서고, 급여는 집밥입니다.

올해 7월부터는 그 회사가 NAS 쇼핑몰을 열어 시놀로지 NAS를 팝니다. 사장님은 아내, 서버와 견적서와 배송 메일은 IT 부서 담당입니다.
27년 동안 ‘데이터 날아가면 어떻게 되는지’를 남의 전산실에서 지켜본 사람이 상담하는 백업 장비라, 상담이 좀 깁니다. 안 사셔도 좋으니 백업은 하시라고 붙잡습니다.

4. 6년 숙성시킨 자격증

공인중개사는 제28회 시험으로 따 두고, 한참 묵혔다가 2023년 8월에 개업했습니다.
현성공인, 진흥공인을 거쳐 지금은 금강다온 공인중개사사무소입니다.
2023년 겨울부터는 경매·공매 쪽으로 방향을 잡았고, 지금 주력은 법원 경매 대리입찰입니다.

경매는 서류와 기한과 숫자의 싸움입니다. 27년 동안 ‘한 글자 틀리면 시스템이 죽는’ 세계에서 살던 습관이 여기서 그대로 씁니다. 입찰표 금액란에 0 하나 더 쓰면 어떻게 되는지, 저는 굳이 경험해 보지 않아도 압니다.

5. 그래서, 풀스택이 맞긴 한가

요즘은 AI와 둘이서 웹 서비스를 직접 만들고 운영합니다.
경매 매물 사이트, NAS 쇼핑몰, 블로그, 그걸 돌리는 리눅스 서버 세 대, 백업, 새벽 크론, 카톡 알림, 도메인과 인증서까지. 기획부터 배포까지 혼자 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코드의 상당 부분은 AI가 씁니다.
제 역할은 옆에서 “그거 아니야”라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27년 동안 남의 시스템이 왜 죽는지를 지켜본 사람이라, “그거 아니야” 하나는 꽤 정확합니다.

메인프레임 시절엔 풀스택이라는 말 자체가 없었습니다. 그냥 다 했습니다.
그러니까 답은 이겁니다. 풀스택이 맞긴 한데, 27년 전부터 그랬습니다. 이름만 이제 생겼습니다.

6. 하는 일 정리

  • 법원 경매·공매 대리입찰과 권리분석 (금강다온 공인중개사사무소)
  • 아내 회사 현성리얼티의 시놀로지 NAS 판매·백업 구축 기술 담당 (랜섬웨어 맞고 후회하기 전에)
  • AI를 붙여 웹 서비스를 혼자 기획·개발·운영하는 일

이 블로그엔 그 세 가지를 하면서 겪은 것들을 씁니다.
전산실 얘기는 재미없으니 조금만 하고, 경매 얘기는 많이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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